"위로"를 이야기하는 그림책
(1) 아이도 어른도 필요한 "위로"
영어 제목은 <The Rabbit Listened>이다. '귀 기울인 토끼'라고 해석하면 될까? 표지에 꼬마 테일러와 토끼가 꼭 껴안고 있다. 테일러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토끼의 모습인가 싶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과 위로받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런 주제의 경우 번역으로 표현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 같은데 번역이 잘 된 느낌이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한번 읽어보고 "아......"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 내가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어른인 우리도 살면서 속상하고 힘든 일들이 많다. 그때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내가 사람하는 사람이 힘들거나 속상할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단, 위로(慰勞)를 사전적으로 찾아보면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이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를 언뜻 받아들이면 속상하고 힘든 일을 겪는 상대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뭔가 해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어쩌면 사전적 의미에 조금 빠진 내용이 있는 느낌이다. 상대방의 마음과 감정을 먼저 '인정해주기'가 빠진 것 같아서이다.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위로'에 대해 잘 그리고 썼다. 어른이 읽어도 좋은 훌륭한 그림책이다.
(2) '가만히' 그리고 '들어주기'
이 그림책에서 멋지게 쌓은 블럭 성을 쌓은 테일러의 의기양양하고 뿌듯한 표정의 장면은 나도 모르게 미소짓고 hoho는 "와~"했다. 그래서 다음 장면에서 쌓아놓은 블럭이 무너지는 장면은 아이들과 어른 모두에게 아이고!할만큼 정말 공감할만한 장면이다. hoho도 눈이 커지며 "무너졌다!", "많이 무너졌다!"하면서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테일러가 무너진 블럭을 등지고 웅크리고 않은 장면은 얼마나 테일러가 절망했는지 알 수 있다. 그때 그 일을 알아챈 닭이 테일러에게 다가온다. 닭, 곰, 코끼리, 하이에나, 타조, 캥거루, 뱀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테일러를 위로하려고 한다. 이 동물 친구들의 태도는 우리가 흔히 ‘위로’라고 할 때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속상한 테일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지 않고, 각자 자기식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것이다.
나도 hoho가 속상해할 때, 무심코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하며 조언부터 꺼낼 때가 많다. 정작 속상한 hoho의 마음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마음을 먼저 ‘가만히’ 들어주고, 지켜봐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주 잊게 된다.
우리는 먼저 ‘가만히’ 아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그다음에 ‘들어주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이 두 가지를 잘 하지 못한다. 진심으로 위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잠시 그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닭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보라고 재촉하고,
곰은 화가 나겠다고 소리를 질러보라고 권하고,
코끼리는 자기가 다시 만들어주겠다고 해결해주려고 하고,
하이에나는 웃어 버리라고 하고,
타조는 땅에 머리를 박고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행동하라고 하고,
캥거루는 망가진 블럭조가리를 치워버리자고 하고,
뱀은 똑같이 복수하자고 한다.
위로의 중요한 키워드 "공감"
(1) 위로는 공감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만히 들어주었어≫는 위로는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위로는 힘든 마음과 감정을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가만히 들어주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감이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이나 태도로써, 상대방에게 무조건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존중'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존중하면, 나와 다른 타인의 마음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에 나오는 토끼는 테일러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준다. 소리 지르는 것도, 복수하겠다는 계획도, 웃는 것도 모두 들어주며, 결국 테일러가 “다시 해 볼래, 지금 당장!”이라는 말을 할 때까지 곁에서 함께해 준다.
이 그림책을 읽다 보니 문득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사춘기 시절, 속상해서 누군가에 대해 엄마께 험담을 늘어놓았던 적이 많다. 그때 엄마는 “다른 사람을 그렇게 험담하면 안 돼”라고 꾸짖지도 않으셨고, “걔는 왜 그렇게 나쁘니” 하며 함께 화를 내지도 않으셨다. 언제나 “그렇구나”, “너 속상하구나, 어쩌니……” 하시며 내 마음을 읽어주셨다.
엄마는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시고 그저 들어주셨기에, 나는 그런 시간 속에서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고 추스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와서 나도 자식을 키워보니,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낀다. 그 조용한 듣기의 바탕에는 무엇보다도 ‘공감’이 있었던 것이다.
(2) 작가의 공감가는 그림표현
코리 도어펠트 작가는 이렇게 '위로'와 '공감'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잘 맞게 표현했다. 물론 글도 잘 썼지만 그림 표현이 매우 훌륭하다. 글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그림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 테일러의 속상하고 절망적인 마음을 이해하려면 엄청난 새떼가 블록을 한 번에 쓰러뜨리는 장면을 보면 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일은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블록이나 만들어 놓은 장난감들이 무너지거나 치워지면 울고불고 속상해하는 일 말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이 책을 보자마자 작가가 너무 궁금했다. 찾아보니 많은 자료는 없어지만 ≪가만히 들어주었어≫ 그림책은 <타임지 선정 BEST 10 어린이 책 2018>, <뉴욕 타임스 눈에 띄는 어린이 책 2018>, <뉴욕 타임스 편집자 추천 도서 2018>, <월스트리트 저널 최고의 어린이 책 2018>, <인디 넥스트 리스트 선정 올해의 책 2018>, <뉴욕 공립 도서관 선정 최고의 어린이 책 2018> 등 수많은 상을 받은 유명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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